Ticker

6/recent/ticker-posts

[유리알 유희 리뷰] 앞으로 오지 않을 미래

 

 

 

  • 책 대출 난이도: ★★★★

 

 4월에 책을 읽었지만 시기를 놓쳐 뒤늦게 5월에 작성하게 된 유리알 유희 감상문입니다. 이 책을 처음 들어보신 분들도 계실 거고 저도 처음에 그랬지만 저자는 무려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 '데미안'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중고등학생의 필독 도서가 됐는데 이 책은 헤르만 헤세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 되겠습니다. 책 설명에 따르면 1931년부터 1942년에 완성한 집필 기간이 꽤 길었던 작품이기도 한데요. 이 작품을 출간한 뒤 1946년에 헤르만 헤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아 도서관에 찾기가 힘드므로 책 대출 난이도는 4점으로 매깁니다. 저도 이 책은 구입신청으로 새 책을 주문한 뒤 읽어보게 됐죠.

 

 

 유리알 유희의 장르를 말하자면 놀랍게도 'SF'에 가깝습니다. 일단 유리알 유희란 말 그대로를 옮겨보면 철학도 종교도 아닌 독특한 훈련이며 예술에 가까우면서도 정교한 통일성과 규칙이 존재하는 행위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유리알 유희는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럴 게 이 행위를 '표현'하는 모습은 책에 한번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거든요. 작중 배경은 '카스틸리엔'이라는 곳인데 이곳은 헤르만 헤세가 전쟁을 겪은 '현재'에서 우리 시대보다 몇 세기가 지난 뒤의 교육주입니다. 이곳에서 유리알 유희만을 다루는 사람들이 있고 그중에서 최고로 치는 것이 유리알 유희 '명인'입니다. 대충 요즘으로 치면 대학교의 학과장 같은 느낌이라고 봐야 되겠죠.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학문보다 숭고하고 고상한 직업처럼 나옵니다.

 책은 그중 유리알 유희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그의 어린 시절부터 죽음까지를 자서전 형식으로 풀어낸 소설입니다. 작중에서는 시대 배경이 언제쯤인지는 모호한데 크네히트가 살았던 시절은 23세기, 그리고 이 크네히트의 자서전이 나온 시기는 25세기라고 뒷이야기로 나옵니다. 즉 2200년과 2400년이란 소린데 지금 우리의 시대보다 훨씬 미래라 머리가 복잡해지긴 하더군요. 다만 의외로 발전된 과학 기술은 전혀 드러나지 않고 크네히트가 머무는 카스틸리엔의 모습만 중점적으로 나오기에 생활양식은 현대보다는 헤세가 살았던 시절과 거의 똑같다고 봅니다.

 

 시작은 크네히트의 어린 시절부터 나오는데 그의 머리가 꽤나 명민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무엇보다 그가 유리알 유희를 할 수 있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음악을 다룬다는 것이었죠. 그는 음악 명인을 만나 연주를 하면서 카스틸리엔 학생으로 발탁됐고 음악 연주는 죽을 때까지 그의 원동력이 된 듯합니다. 특이하게도 크네히트가 들어간 카스틸리엔은 졸업한 뒤 그곳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면 정부에서 모든 지원을 해주면서 유리알 유희만 연구할 수 있는 특혜를 제공하는데요. 이게 거의 죽을 때까지라 요즘 교수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환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 졸업생은 카스틸리엔에 자리를 잡는 것 외에도 카스틸리엔 바깥의 평범한 지역에 교사로 자리를 잡아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죠.
 이런 카스틸리엔의 모습은 흡사 수도원과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철저히 유리알 유희만을 연구하고 훈련하는 모습은 헤세가 단 한번도 종교적인 색채를 드러낸 게 아님에도 종교적인 무언가가 느껴지게 했죠. 쉽게 말해 종교인들에게 있어서 숭배해야 할 존재가 신이라면 카스틸리엔에서 숭배하는 존재는 학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죠. 유리알 유희 명인은 그 정점에 선 자로 크네히트가 성장하고 유리알 유희 명인이 되어가는 모습은 성직자가 교황이 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유리알 유희는 다시 쓰지만 설명이 불가합니다. 크네히트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인 유희가 '중국 건축'과 관련된 유희라는데 작중에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거든요.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이 유리알 유희는 학문의 본질과 관계되어 있다는 걸 생각하게 했습니다. 저도 이걸 단어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대충 '교육철학'이라는 단어를 써야 되지 않을까요? 학문을 일찌감치 때려치운 사람에겐 유리알 유희 자체가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유리알 유희란 지식을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고 헤르만 헤세가 유리알 유희를 쓰게 된 과정 또한 지식의 본질을 소설로 표현한 것이기에 이것도 유리알 유희로 해석하기도 하더군요.

  어려운 내용들이 많이 지나가지만 제 머리속에 하나 박히는 내용이 있었으니 그것은 카스틸리엔의 탄생 과정이었습니다. 카스틸리엔은 잡문시대를 겪은 지식인들이 시대에 저항하면서 지식을 숭상하는 상아탑 같은 교육주로 탄생하게 된 것이었는데요. 이 잡문시대란 것이 헤르만 헤세가 겪었던 세계대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세계대전은 폭력의 시대였고 이런 상황에서 지식인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습니다. 이 당시 지식인이 따를 수 있는 건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며 비굴하게 펜을 돌려 살아남거나 권력자의 부당함을 비판하다 총을 맞고 쓰러지는 것이었죠. 헤르만 헤세 또한 이런 양자택일의 상황을 겪었던 듯하고 그것이 하나의 아픔이 되어 이 책을 쓴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비록 현실은 카스틸리엔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 당시 상황은 너무나도 비극적이었기에 지식인들이 일어나 새로운 사회체계를 만들었다는 미래를 상상한 것이죠. 그가 만든 카스틸리엔에서는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카스틸리엔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잡문시대의 저항으로 태어났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크네히트의 시대에는 카스틸리엔 자체가 '귀족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카스틸리엔은 너무 폐쇄성이 강했기에 이곳에 소속된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연구에만 관심을 둘 뿐 카스틸리엔 바깥의 상황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들은 정부를 통해 어마어마한 혜택을 업고 학문을 계속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있을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결여되어 있었죠. 분명 전쟁으로 인해 정신적인 문명이 황폐화되어 문명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카스틸리엔이 먼 미래에는 성역화되어 일반인들이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게 아닐까요? 여기서 잠깐 언급한 듯한데 플라톤의 철인정치와 비슷한 느낌이었죠.

 이것을 오랜 기간 명인으로 활동한 크네히트가 지적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식인들은 이미 그 폐단에 빠져버렸기에 인정하지 못 했죠. 사실 크네히트도 이런 지식인들 중 하나가 될 뻔했지만 카스틸리엔의 방식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중도에 이탈한 옛 친구가 있었기에 의식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카스틸리엔의 입장에서는 '이단'적인 인물이지만 그런 생각의 차이가 그가 명인으로 계속 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된 듯하고요. 결국 크네히트의 말은 카스틸리엔에서 배우고 훈련한 모든 것들을 대중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이것이 지식인이 해야 할 의무이며 현실로 치면 사회에 자신의 지식을 환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지식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자산은 무엇보다 지식이기 때문에 그것을 죽기 전까지 자신의 학생들에만 베풀 게 아니라 대중에게 가르치고 전달해야 한다는 뜻으로 보여집니다. 외부세계에서 일하는 카스틸리엔 출신의 교사들을 크네히트가 긍정적으로 바라본 거죠.
 크네히트의 주장이 카스틸리엔에서 어디까지 받아들여졌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카스틸리엔은 크네히트가 죽은 뒤 200년이 지나도 존재했고 그의 자서전이 쓰여질 정도니 그 주장은 먼 미래에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 크네히트의 최후는 미래 세대에 맡기는 옛 문명의 그림자와도 같았습니다. 결국 지식을 환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앞으로 자신 다음에 살아가게 될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니까요. 그렇게 그의 최후에 영향을 받은 소년은 자신이 '빚진 자'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순간 크네히트와 소년은 지식의 세계에서 부모 자식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미래 세대인 소년이 계속 숨쉬고 살아가는 이상 문명 또한 살아있을 것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빚진 것은 언젠가 갚아야 하듯이 미래 세대는 또 새롭게 태어날 미래 세대의 사람에게 지식과 문명을 전달하게 되겠죠.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랬고 미래도 인간은 그렇게 살아갈 겁니다.

 책은 두 주제로 나뉘는데 전반부가 크네히트의 자서전을 미래의 카스틸리엔 구성원이 쓴 것이었다면 후반부는 크네히트 본인이 쓴 세 자서전을 다룹니다. 헤르만 헤세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세 자서전의 이야기는 '수레바퀴 아래서'나 '싯다르타'에 나올 법한 분위기의 이야기들을 쓴 듯합니다. 재밌게도 본인이 쓴 자서전이기 때문에 크네히트로 표현되는 주인공이 세 번 다 나오는데 그 세 번 모두 전부 다른 시대상의 인물들입니다.
 이걸 보면 상징적이라는 말이 와닿는데 보시다시피 카스틸리엔이란 공간은 현실 공간이라기보단 지식인들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한 보이지 않는 장소에 가깝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카스틸리엔에서 유리알 명인으로 유명해진 크네히트는 이 세 자서전에 모두 등장하면서 이상적인 지식인이자 모든 역사를 초월하여 등장하는 존재란 걸 알 수 있죠. 그러니 크네히트란 인물도 헤르만 헤세가 만든 가상의 인물 그 자체이자 지식인으로서의 상징적인 존재란 뜻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헤르만 헤세 본인의 모습을 반영한 것 같기도 한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헤르만 헤세가 자기 자서전을 써놓고 소설 형식으로 바꿔서 가상의 설정을 더 넣으면 지금의 유리알 유희가 되지 않을까 상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카스틸리엔 같은 이상적인 미래란 오지 않을 겁니다. 유감스럽게도 현대 사회는 제가 봤을 때 이런 정신적인 것에 중점을 두지 않고 물질적인 것에 더 많은 중점을 둡니다.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현실은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카스틸리엔의 첫 자리도 나오지 않았으며 지식인보다 상인들이 더 득세하는 시대입니다. 애초에 일도 하지 않는 카스틸리엔의 사람들을 정부가 무제한으로 지원해줄 일은 불가능해 보이고요. 덕분에 전쟁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으며 언제라도 시한폭탄이 터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카스틸리엔 시대에는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가 커다란 집과 유복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게 다 옛말이란 말이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이 그 시대가 아닙니까? 현실의 지구는 다른 분기점을 골랐습니다. 그래서 카스틸리엔은 영영 오지 않을 겁니다.
 반대로 카스틸리엔이 온다고 하면 저는 어떤 식으로든 막고 싶습니다. 그 정도의 의식 변화가 있어야 한다면 우리는 또 다시 새로운 세계대전을 맞이해야 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죠. 2차 세계대전보다 훨씬 끔찍한 결과를 겪게 되고 나서야 우리는 카스틸리엔을 받아들일 겁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이 생길 테니까요. 어린 시절 유토피아를 보고 너무 이상적이라 비웃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 유리알 유희를 읽고 나서는 절대로 이 책을 비웃을 수가 없게 됐습니다. 오면 좋겠지만 절대로 오면 안 될, 미래의 청사진이나 마찬가지였거든요.

 

 

 작품이 어렵긴 하지만 번역이 잘 되어 있어서 이 정도면 이해가 쏙쏙 잘 됐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헤르만 헤세 작품 중 딱 하나 읽은 데미안보다 더 마음에 든 게 이 작품입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런 학문의 본질을 어디에서도 인식하거나 배우기 힘들 것이라고 봅니다. 철저한 황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근래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인생책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책은 현대 세대인 저와 앞으로 태어날 미래의 세대들에게 위안을 주는 작품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지식인이 사회의 선두에 서는 일은 결코 없겠지만 그럼에도 과거의 지식과 유산을 미래에 이어주는 지식인의 역할은 끊이지 않아야 할 것이며 직업으로 지식인이 아니어도 우리 개개인도 그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인간이라고 좌절한다면 이 책을 펼쳐 보십시오. 분명 답은 있을 것이고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것 뿐입니다.

 

 

 유리알 유희 리뷰를 마칩니다. 노벨문학상 작품들 가운데 가장 흥미롭고 인상에 강하게 남은 책입니다. 다음 5월 책은 읽고 있지만 또 언제 리뷰를 쓰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댓글 쓰기

0 댓글